임산/칼럼

생명과학 공부를 시작하며

임산 2018. 8. 19. 16:50

"평생의 공부가 마음과 몸을 젊게 만든다! (Life-long learning makes mind and body young.)"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여덟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함부르크에 있는 면제품 수출 회사에 견습공으로 들어간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공무원, 교수, 변호사 그리고 의사들을 배출한 집안이었는데 드러커는 부친의 뜻을 헤아려 당시 함부르크 법과 대학에도 등록을 한다. 그 당시 대학은 수업에 꼬박꼬박 출석할 필요가 없었고, 조교를 통해 대출도 쉬웠기 때문에 견습생 생활과 대학생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대학생은 팔리지 않은 가장 값싼 좌석에서 오페라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는데, 견습공일을 마치고 무료로 오페라를 관람하던 어느 날 19세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e, 1813~1901)의 오페라, 폴스타프(Falstaff)를 만나게 된다. 그날 이후 폴스타프의 매력에 빠져든 드러커는 오페라를 관람한 후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다 깜짝 놀란다. 그토록 명랑하고 인생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오페라를 작곡한 베르디가 여든 살의 노인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건강한 사람의 평균 수명도 50세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80세란 나이는 흔한 나이가 아니었다. 그 날 드러커는 베르디가 직접 쓴 글을 읽었는데 누군가 베르디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미 유명인이 된 당신이, 왜 굳이 힘든 오페라 작곡을 계속하는가?”

그 때 베르디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한다.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 왔습니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썼지만,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분명 한 번 더 도전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르디에 깊은 영감을 받은 드러커는 남은 인생과 저술활동 가운데, 베르디가 여든이라는 나이에도 완벽을 추구하며 오페라를 작곡했던 그 때 그 심정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몇 년 뒤,
드러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옮겨 증권 회사 견습생으로 일하게 되는데 1929년 10월 뉴욕 증권 시장이 붕괴되고 그가 근무하던 증권회사도 파산하게 되면서 정확히 스무 살 되던 날에 프랑크푸르트 최대 신문사에 금융 및 외교 담당 기자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당시 그는 함부르크 대학에서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법과 대학으로 전학을 했는데 당시 유럽에서는 이 대학에서 저 대학으로 학적을 옮기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했다.

법학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드러커는 퇴근 후 남은 오후 시간과 밤 시간을 이용해 공부를 하면서 자기만의 공부법을 개발해서 활용한다. 그는 3년 혹은 4년마다 다른 주제를 선택해서 공부했는데, 그 주제는 통계학, 중세 역사,일본 미술, 경제학 등 매우 다양했다. 물론 3년 정도 공부한다고 해서 그 분야를 완전히 터득할 수는 없겠지만, 그 분야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 후 드러커는 2005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60년이 넘게 3년 내지 4년마다 주제를 바꾸어 새로운 분야를 공부했다. 이 방법으로 그는 상당한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새로운 주제, 새로운 시각 그리고 새로운 방법론 등에 대해 오픈 마인드를 갖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공부한 모든 주제들이 각기 다른 가정과 다른 방법론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드러커의 인연은 20대 말에 첫직장 이랜드그룹에서 300명 가까운 조직의 본부 부서장을 맡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두려운 마음에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The Effective Executive)"를 시작으로 드러커의 경영학 저서들을 5년에 걸쳐 20권 정도 읽었는데, 드러커 선생에게 배운 공부법을 나에게 맞게 활용했다. 제일 처음 '성과를 향한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만났던 'The Effective Executive'는 50대가 된 지금까지 20회 넘게 읽었고, 드러커를 대표하는 한국의 교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드러커의 경영을 인터널과 익스터널로 구분하여 집대성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지난주에는 대한나노의학회가 주최하는 '바이오나노메디신쌀롱'에 참석했다. 바이오, 헬스케어, 유전체 플랫폼 등 생명과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모임은 '허혈성 질환 치료를 위한 나노의약품 개발'이라는 테마로 전북대 정환정 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암연구소 대회의실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이 모임은 의사, 과학자, 변리사, 투자자, 규제기관 등 30여명 내외가 모여 연구자의 발표를 듣고 토론하는 모임인데 서울대학교 바이오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한 분들이 전체 구성원의 50% 가까이 되고 모임을 후원한다. 늘 그렇지만 이 모임의 백미는 발표 후에 이어지는 토론이다. 저녁 6시에 시작해서 40분 발표와 저녁 8시까지 1시간 20분 테이블 토론이 끝나면 혜화동의 한 호프집으로 이동해 맥주를 마시면서 정치(P), 경제(E), 사회문화(S), 기술(T) 등의 테마로 난상토론이 이어진다. 가끔 바쁜데 무슨 쓸데업는 짓이냐고 2차 모임에 참석 안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전문용어로 'PEST 분석', 즉 비즈니스 환경 분석은 "기업이 무엇으로 돈을 벌 것인가?"를 고민할 때 경영자들이 관찰하고 분석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표현이 좀 멋하지만 인문사회계열 출신으로 지난해 보건복지부 미래의료포럼 위원(혁신기획가)으로 초대받아 의료분야 혁신을 위해 토론할 기회를 가졌고, 당시 위원장 대한나노의학회 강건욱 회장님 제안으로 한 달에 한 번 서울대 쌀롱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생명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해 알아가고 배워가는 맛이 솔솔하다. 어떤 분이 경영학 창시자 피터 드러커 선생에게 늙지 않는 비결을 물었을 때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 뇌리를 스쳐간다.

"평생의 공부가 마음과 몸을 젊게 만든다. (Lifelong learning makes mind and body young.)"


2018년 4월 11일에 쓴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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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에 격주로 발행되는 시사 경제지 지면에 올린 칼럼입니다. 네이버, 다음에도 소개된 칼럼인데 조금 늦었지만 블로그에 공유합니다. 생명과학 공부 시작한다고 칼럼을 쓴지 4개월, 송도 소재 생명공학 회사에 다닌지 어느새 두 달 째 접어드네요. 

이것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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